원조를 늘리면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이 커진다는 설명은 오래 통했습니다. 올해는 숫자가 다릅니다. 정부가 확정한 2026년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5조 4,372억원으로 6조 5,010억원이던 지난해보다 1조원 넘게 줄었고, ODA 예산 삭감이 발표된 시점은 성과 중심 개편안이 의결되기 다섯 달 앞이었습니다.
ODA 예산 삭감, 성과주의 개편의 쟁점
감액이 먼저 정해지고 개편 논리가 뒤따라온 구조에서는, 성과를 앞세운 설명이 사업의 질을 끌어올리는 장치로 읽히면서 줄어든 예산을 해명하는 근거로도 쓰입니다.
ODA 예산 삭감이 먼저
2026년 외교부 ODA 예산은 2조 1,852억원으로 정해졌습니다. 5년 만의 감소였습니다. 기획재정부는 저성과 사업과 중복 사업을 정리해 1조 6,000억원을 절감했다고 밝혔는데, 2024년 한 해에 원조가 40% 가까이 늘었던 흐름을 원래 증가 추세로 되돌린다는 설명이 함께 붙었습니다.
무상원조는 폭이 더 큽니다. 2026년 무상분야 규모는 2조 8,435억원으로 전년 3조 6,905억원에서 22.9% 줄었고, 사업 수는 1,555개로 84개, 시행기관은 37개로 4개가 각각 감소했습니다. 2026년 한국의 원조는 규모와 사업 수, 시행기관 수가 함께 줄었습니다.
| 구분 | 2025년 | 2026년 |
|---|---|---|
| 전체 ODA 규모 | 6조 5,010억원 | 5조 4,372억원 |
| 사업 수 | 1,928개 | 1,763개 |
| 시행기관 수 | 41개 | 37개 |
| 자료: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종합시행계획(확정액 기준), 2025·2026년 | ||
세 숫자가 같이 움직였습니다. 정부는 통합과 구조조정의 결과라고 설명했고 예산 당국은 27조원 규모 지출 구조조정의 일부라고 설명했는데, 두 설명이 가리키는 대상은 같은 숫자입니다.
한국 무상원조의 고질적 병폐: ‘분절화’
분절화는 한국 원조의 오래된 지적입니다. 여러 기관이 소규모 사업을 각자 벌이면서 원조의 방향과 효율이 흩어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수원국 부담도 늘어납니다. 부처마다 따로 접근해 승인을 요구하면 상대국 담당 부서는 같은 절차를 여러 번 밟아야 하고, 그 비용은 원조 금액에 잡히지 않은 채 현지에 남습니다.
시행기관 수와 사업 수는 예산이 줄면 함께 줄어드는 숫자여서, 41개가 37개로 바뀐 변화만으로는 통합이 작동했는지 감액이 지나간 자리인지 갈라지지 않습니다. 이 숫자는 부처 수가 아닌 부처와 산하기관을 합친 시행기관 기준입니다.
외교부는 2026년 1월 무상원조 통합·혁신 방안을 의결하고 분절된 사업 수요를 한국국제협력단(KOICA) 사업으로 옮기는 구상을 내놨습니다. 현장 평가는 갈렸습니다. 이태주 한성대 교수는 사업 수와 시행기관을 줄이는 조치만으로는 통합 흉내에 그칠 수 있다고 짚으면서 국제개발협력청 신설을 대안으로 내놨는데, 부처가 쥔 예산 편성권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 근거였습니다.

성과주의가 겨누는 대상은 청년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은 4대 전략목표를 세웠습니다. 청년 산업인력 양성, 건강한 청년 육성을 위한 보건의료 회복력 강화, 청년의 기후 회복력, 청년 소득증대 기반의 농촌 지역사회 조성입니다.
대상을 좁히면 측정이 쉬워집니다. 훈련 인원과 취업률, 소득 증가처럼 세기 좋은 지표가 청년 사업에서는 비교적 빨리 나오기 때문입니다. 위험도 함께 커집니다. 영유아 사망률이나 고령 인구 돌봄처럼 결과가 늦게 드러나는 영역은 단일 성과관리 체계에서 후순위로 밀리기 쉽고, 최빈국일수록 그쪽 수요가 큽니다.
성과 압박은 현장의 시간표를 바꿉니다. 정량 지표를 채우는 일이 앞으로 당겨지고, 제도 개선이나 거버넌스 정비처럼 몇 해 뒤에야 결과가 보이는 사업은 제안 단계부터 밀립니다. 개발협력의 효과는 대체로 여러 해에 걸쳐 나타나는데, 예산 주기는 한 해입니다.
한국은 애초에 권고치보다 낮아
202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의 원조 총액은 1,743억 달러로 전년 대비 23.1% 줄었습니다. 낙폭이 가장 컸습니다. 독일과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다섯 나라가 감소분의 95.7%를 차지했고, 미국 한 곳의 감소가 전체의 4분의 3가량이었습니다.
한국은 2025년에 38억 7,000만 달러를 지원해 34개국 가운데 14위였습니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비율은 0.2%로 23위였습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스웨덴처럼 유엔 권고치인 0.7%를 넘긴 나라들은 총액이 적어도 비율에서는 앞자리를 지켰는데, 원조가 세계적으로 줄어든 해에도 기준선을 지킨 쪽이 이 나라들이었습니다.
정부 예산에서 원조가 차지하는 몫은 여전히 1%를 밑돕니다. 2026년 총지출 728조원에 견주면 0.75% 안팎입니다. 재정 전체에서 무게가 가벼운 항목이 지출 구조조정의 앞줄에 놓인 셈이고, 절감액 1조 6,000억원도 총지출 대비로는 0.2%를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무엇을 성과로 셀 것인가
앞으로 나올 발표는 줄어든 숫자를 성과로 내놓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관 수와 사업 수, 절감액이 그렇습니다. 항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같은 기간에 사업당 규모가 커졌는지, 중복이 실제로 사라졌는지가 함께 제시돼야 통합과 감액이 갈라지고, 그 자료는 평가 결과가 공개되는 시점에야 확인됩니다.
압축 성장 경험을 옮기는 방식도 다시 정리될 대목입니다. 직업훈련원 건립과 농촌 개발 모델은 코이카가 오래 쌓아온 영역이었습니다. 현지 주도를 앞세워 공여국의 개입을 줄이면 경험이 오가는 경로도 함께 줄어들고, 그 자리에는 숫자로 정리된 지표만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