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가 식민지배한 나라를 꼽으면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리남까지 대륙을 가리지 않고 열두 곳이 나옵니다. 17세기 유럽의 작은 신생 독립국이 어떻게 이만한 바다를 손에 넣었는지 놀랍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을 네덜란드 식민지라는 한 단어로 묶어 읽으면 중요한 차이가 지워집니다. 같은 목록에 올라 있어도, 300년 넘게 직할 통치한 곳과 두 달 만에 철수한 곳이 나란히 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 식민지배를 받은 국가 목록
세계로 나간 방식은 정복이 아니라 회사
네덜란드의 팽창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영토 정복과 결이 달랐습니다. 앞장선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두 개의 거대 회사였습니다. 동인도회사 VOC는 1602년 세워져 아시아 향신료와 도자기 무역을 쥐었습니다. 서인도회사 WIC는 1621년 출범해 대서양의 설탕과 노예 무역을 맡았습니다.
두 회사는 군대를 부리고 조약을 맺는 권한까지 손에 넣은 나라 안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 식민지의 상당수는 총독부가 아니라 무역 거점으로 첫발을 뗐습니다. 열두 곳 가운데 이 틀에서 벗어난 예외가 인도네시아입니다. 1799년 VOC가 파산하자 네덜란드 정부가 직접 통치를 넘겨받았고, 그 지배는 1942년 일본군이 들어올 때까지 340년을 이어갔습니다. 열두 곳의 지배 기간은 짧게는 1년 남짓, 길게는 340년 넘게 벌어집니다.
| 지역(현재 국가명) | 지배 기간 | 성격 |
|---|---|---|
| 인도네시아 | 1602~1942 | 향신료 무역·직할 식민지 |
| 인도 | 1605~1825 | 해안 무역 거점 |
| 미국 | 1614~1674 | 뉴네덜란드(모피 무역) |
| 가이아나 | 1621~1815 | 플랜테이션 농업 |
| 대만 | 1624~1668 | 남부 무역 거점·북부 재점령 |
| 방글라데시(벵골) | 1627~1825 | 벵골 무역 거점 |
| 브라질 | 1630~1654 | 설탕 플랜테이션 |
| 스리랑카 | 1640~1796 | 시나몬 무역 |
| 칠레 | 1642~1643 | 단기 원정(약 2개월) |
| 남아프리카공화국 | 1652~1806 | 보급 기착지·정착 식민지 |
| 프랑스령 기아나 | 1660~1677 | 영토 각축 |
| 수리남 | 1667~1975 | 설탕 플랜테이션 |
| 자료: 각국 식민지 역사 기록 종합, 연도 교차 검증 | ||
식민지배라는 한 단어로 묶기엔 성격이 달라
연도만 놓고 보면 대체로 정확합니다. 다만 식민지배라는 분류는 실제 사정을 뭉뚱그립니다. 칠레가 대표적입니다. 1643년 네덜란드 원정대는 발디비아 옛터에 요새를 세웠지만, 마푸체 원주민이 식량을 끊자 두 달 만에 배를 돌렸습니다. 식민지라기보다 실패한 상륙 작전에 가깝습니다. 프랑스령 기아나 역시 네덜란드가 온전히 차지한 땅이 아니라, 영국·프랑스와 뺏고 뺏기던 각축장이었습니다. 인도와 벵골도 아대륙을 다스린 게 아니라 해안 요새 몇 곳을 쥔 무역 거점이었습니다.
대만은 또 다릅니다. 1662년 정성공에게 남부를 빼앗긴 뒤 1664년 북부 킬룽을 되찾아 1668년까지 버텼습니다. 1624~1668이라는 표기 하나로는 이 공백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름 붙이는 방식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로 분류되는 네덜란드령 벵골의 중심지 친수라는 오늘날 인도 서벵골에 있습니다. 결국 열두 곳은 정착 식민지, 노예 플랜테이션, 무역 거점, 실패한 원정을 한 칸에 나란히 담고 있는 셈입니다.
흥미로운 공통점도 눈에 띕니다. 인도와 벵골, 스리랑카, 남아프리카공화국, 가이아나의 지배는 현지 반란이 아니라 유럽에서 맺은 조약으로 끝났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유럽 지도를 다시 그리던 무렵, 영국이 이 거점들을 하나씩 넘겨받았습니다.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운명이 정작 유럽 회의장에서 결정된 셈입니다.

뉴욕을 내주고 수리남을 지킨 계산
목록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수리남입니다. 1667년 브레다 조약에서 네덜란드는 북미의 뉴암스테르담, 곧 지금의 뉴욕을 영국에 넘기고 남미 수리남을 챙겼습니다. 오늘의 감각으로는 뉴욕을 포기한 쪽이 손해로 보입니다. 그러나 당시 잣대는 달랐습니다. 설탕 농장이 돌아가는 수리남이 모피 교역소 뉴욕보다 훨씬 값나가는 자산이었습니다. 사탕수수는 그 시절 가장 확실한 돈줄이었고, 그 단맛의 대가는 노예 노동으로 치러졌습니다. 그 판단 덕에 수리남은 1975년까지 네덜란드령으로 남았고, 지금도 네덜란드어를 공용어로 씁니다.
지도가 남긴 흔적과 그늘
이 네트워크는 언어와 제도에 자국을 남겼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프리칸스어는 네덜란드어에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인도네시아의 행정 구조와 법 체계에도 흔적이 이어집니다. 화려한 무역 제국의 이면에는 노예 무역과 원주민 착취라는 그늘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번영과 착취는 늘 같은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