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표 한 장이면 지구 반대편에 닿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국민 100명 중 95명이 평생 국경을 넘어 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가 2023년 2월부터 5월까지 24개국 성인을 조사한 결과, 해외여행 비경험자 비율은 나라에 따라 95%에서 1% 미만까지 벌어졌습니다. 해외여행 비경험자 비율이란 평생 한 번도 자국을 떠난 적 없는 사람의 비중을 말합니다.
해외여행 비경험자 비율 순위
비경험자가 많은 11개국을 줄 세우면 격차가 더 또렷해집니다. 인도가 95%로 가장 높고, 미국이 23%로 가장 낮습니다.
| 순위 | 국가 | 해외여행 비경험자 비율 |
|---|---|---|
| 1 | 인도 | 95% |
| 2 | 인도네시아 | 92% |
| 3 | 나이지리아 | 90% |
| 4 | 브라질 | 87% |
| 5 | 멕시코 | 79% |
| 6 | 남아프리카 공화국 | 77% |
| 7 | 케냐 | 72% |
| 8 | 아르헨티나 | 64% |
| 9 | 일본 | 34% |
| 10 | 폴란드 | 32% |
| 11 | 미국 | 23% |
| 자료: 퓨 리서치 센터, 2023년 (조사 24개국 중 11개국) | ||
인구 대국이 상위권을 채운 이유
상위 네 나라는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인도(95%), 인도네시아(92%), 나이지리아(90%), 브라질(87%)은 모두 인구가 많은 신흥 개발도상국입니다. 인구가 많다는 건 소득이 그만큼 잘게 나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국가 경제 규모가 커도 개인이 손에 쥐는 돈은 적습니다. 항공권에 숙박비, 현지 체류비를 더하면 국제선 한 번이 몇 달 치 생활비와 맞먹습니다. 벽이 높습니다.

넓은 국토도 한몫합니다. 인도네시아는 1만 7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국내만 돌아도 평생이 모자랍니다. 굳이 비싼 돈을 들여 밖으로 나갈 이유가 약해집니다. 여권 힘도 변수입니다. 여권 파워는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나라의 수를 가리키는데, 이들 나라의 여권으로는 그 수가 적습니다. 선진국 비자를 받으려면 재정 보증과 직업 증명 같은 서류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돈이 있어도 행정 절차에서 막히는 셈입니다. (관련글: 예약 데이터가 말하는 진짜 인기 여행지! 가장 많이 예약된 여행지 TOP 10)
가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격차
비경험자 비율을 가난의 지표로만 읽으면 놓치는 대목이 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인도 응답자의 29%, 인도네시아의 27%, 브라질의 24%는 기회가 생겨도 해외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못 가는 것과 안 가는 것은 다릅니다. 비경험의 일부는 경제력이 아니라 선택에서 비롯됩니다.
반대 사례도 있습니다. 케냐에서는 응답자의 81%가 해외에 나가 본 적은 없지만 기회가 온다면 가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조사 대상 가운데 여행 욕구가 가장 강한 나라입니다. 가고 싶은 마음과 갈 수 있는 형편 사이의 거리가, 케냐에서는 유독 멀게 벌어져 있습니다.
미국은 결을 달리합니다. 1인당 GDP가 조사국 중 가장 높은데도, 절반가량의 나라가 미국보다 해외여행 경험률이 높습니다. 돈이 많다고 국경을 더 자주 넘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미국은 땅이 넓고 다른 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어, 국내 이동만으로도 웬만한 여행 욕구가 채워지는 편입니다.
자유로운 이동은 제도가 만들어
하위권으로 갈수록 제도의 힘이 두드러집니다. 폴란드(32%)는 유럽연합 회원국이라 솅겐 협정의 혜택을 누립니다. 솅겐 협정은 회원국 사이를 국경 검문 없이 오갈 수 있게 한 유럽의 약속입니다. 폴란드 사람은 기차나 차로 독일과 체코를 넘나들고, 저가 항공으로 유럽 전역을 싼값에 다닙니다. 이동의 자유가 제도로 보장되면 해외여행은 결심이 아니라 일상이 됩니다. 문턱이 낮습니다.
일본(34%)은 섬나라라서 무조건 비행기나 배를 타야 하지만, 비경험자 비율이 오히려 낮은 편입니다. 일본 여권은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가 세계 최상위권입니다. 높은 소득과 일찍 자리 잡은 해외여행 시장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섬나라의 역설입니다.
미국이 하위권(23%)에 자리한 데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인구의 상당수가 이민자이거나 그 후손이라, 해외의 가족과 친지를 보러 떠나는 이동이 자연스럽게 많습니다. 관광이 아니라 관계가 사람을 비행기에 태우는 셈입니다.
국경을 넘어 본 경험은 그저 추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퓨 리서치 조사를 보면 여행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세계와 가깝게 연결돼 있다고 느꼈고, 자국이 국제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동성의 격차가 곧 시야와 기회의 격차로 이어진다는 신호입니다. 저가 항공과 기술이 이 간극을 좁힐지, 경제 양극화가 장벽을 더 높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